[커버스토리] 부산에서 다시 쓰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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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1 11:4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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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다시 쓰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미래
 
글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도제 시스템밖에서 출발한 신흥세력

 KAFA1984년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남산 사옥의 한 켠에서 출발했다. 5공화국 정부가 마련한 영화진흥 5개년 계획의 일환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전문기관이 거의 없었다. 연극영화과는 있었지만 제작에 필요한 실습 장비가 매우 열악했다. 게다가 충무로는 전근대적인 도제 시스템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감독으로 데뷔하려면 영화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시쳇말로 10년 이상 굴러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장 경험이 부족한 영화학과 졸업생들과 영화를 향한 꿈을 품어온 비전공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 곳이 KAFA였다. 하지만 KAFA를 바라보는 충무로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그저 먹물들이라고 본 것이다. 반면 수업료가 전액 면제였고 고성능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실습 위주의 현장 교육은 지원자들에게 좋은 기회로 작용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2명을 모집하는 1기는 6.7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중에는 연극영화과 출신도 있었지만, 프랑스문화원이나 영화 소모임(시네마테크)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네필도 상당수였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컸다.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할 전문 영화인력 양성이 설립 목적이었지만, 시류에 휩쓸려 급하게 만들어진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리큘럼은 부실했고, 강사진도 약했다. 1기 영화연출 전공인 이용배 교수(계원예술대학)2015KAFA가 제작한 뒷담화: 학교가 이랬어요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 1기이다 보니, 커리큘럼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 그때그때 땜빵식으로 강의가 배치됐다. 이론 수업도 너무 구닥다리 비판 이론을 가지고 오니까 우리 모두 발끈했다. 불만이 터져서 보이콧을 하고, 별장에 모여서 음모를 꾸몄다. 열의에 가득 찬 1년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개원 및 1기 입학식


 보이콧 사태 이후 강사진이 보강됐고, 현장실습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KAFA를 만든 건 국가였지만, 허술한 커리큘럼을 보수하고 시스템을 만든 건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전투적인 열정이었던 셈이다. “수업을 통해 배운 것보다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배웠다는 허진호 감독(9)의 말처럼 동기들과 토론하고 품앗이하고 술 마시고 다투면서 그들 스스로 영화와 깊게 접속했다. 여기에 고() 유영길 촬영감독과 유재형 촬영기사 등 영화계 베테랑들이 교수진으로 합류하면서 경쟁력을 갖춰 나갔다. 때마침 20개 제작사에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주었던 영화법이 1985년 개정되고, 이를 통해 패기 넘치는 신진 기획자들이 나타나면서 KAFA 출신의 입지를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1988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UIP직배 반대 투쟁이 역설적이게도 국내 영화 경쟁력을 높이는 작용을 하면서 도제 시스템 밖에 있는 KAFA젊은 피를 원하는 충무로 수요도 늘었다.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사는 KAFA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해로 꼽히는 2003년에도 KAFA 출신의 활약이 돋보였다. 살인의 추억(봉준호 11),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11), 바람난 가족(임상수 5), 스캔들- 남녀상열지사(이재용 7), 싱글즈(권칠인 2), 4인용 식탁(이수연 13) KAFA 출신 감독들이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놓으며 영화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돌파하려는 KAFA 출신 신인들의 야심이 차승재(싸이더스), 오정완(), 김미희(좋은영화), 심재명(명필름) 등 참신한 기획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젊은 제작자들과 만나 영화계가 꽃을 피운 시기였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재학시절 만든 <지리멸렬>
 
하나의 브랜드가 된 장편과정
 연출만 선발하던 KAFA는 해를 거듭하며 촬영·애니메이션·프로듀싱 과정을 개설해 분야별 전문인력을 확장해나갔다. 개성 있는 촬영기법을 선보인비트〉〈 살인의 추억의 김형구 촬영감독(4), 미술관 옆 동물원〉〈 밀양의 조용규 촬영감독(11), 장화, 홍련을 조율한 김영 프로듀서(8) 등도 이곳 출신이다. 정규 학위를 주는 학교가 아닌 국가부설기관이 한국 영화계에 끼친 변화의 바람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비롯한 영화·영상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KAFA의 독점적인 지위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타 기관에 비해 우월하다 평가 받던 장비들 역시 세월을 입었다. 한동안 눈에 띄는 KAFA 출신 신인 감독이 나오지 않으면서 안팎으로 KAFA의 시대는 지났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부침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터닝포인트가 된 건 장편과정이다. 2007년 만들어진 장편과정은 1년 동안 1억 원 남짓한 예산으로 학생들이 장편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정규과정 졸업생 중 경쟁을 뚫고 선발된 소수의 학생을 지원한다. 초창기에는 우려의 시선이 존재했다. 그러나 불안감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 건 장편과정 3기 작품인 윤성현 감독의파수꾼(2010)이었다. 파수꾼20회차 미만으로 찍은 저예산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놀라운 결과물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계획에 없던 극장 개봉을 하면서 흥행도 했다. 만드는 데 의의를 두던 장편과정이 배급으로 영역을 넓히는 순간이었다. 파수꾼KAFA로 인재를 낚는 강태공 역할도 했다. KAFA에 가면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 이는 지망생들에게 굉장한 동기를 부여했다.
 〈파수꾼이후잉투기(2013)소셜포비아(2014)죄 많은 소녀(2017)아워 바디(2018)야구소녀(2019)혼자 사는 사람들(2021) 등 좋은 성과를 내는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면서 장편과정은 충무로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KAFA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은 물론, 봉준호 장준환 최동훈으로 대변되던 KAFA의 세대교체도 일궈냈다. 배우 발굴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파수꾼의 이제훈과 박정민, 소셜포비아의 변요한, 잉투기의 엄태구와 류혜영,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 등이 장편과정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교육기관인 동시에 제작사 역할도 담당하는 인큐베이터이자 졸업작품이 개봉작으로 관객을 만나는 신인들의 등용문이 된 것이다. 소수정예의 예술영화 레이블, 현장에서 활동하는 교수진의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배움의 장. KAFA의 성과는 그렇게 지속됐다.

 
     
<야구소녀> 최윤태 감독 (장편과정 12기)
 
예산 확보로 반전을 꿈꾸는 부산 시대
 2018년 부산 수영구로 이전한 KAFA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았다. 부산 이전은 정부의 국가 지방 균형 발전 정책에 따른 결정으로, 정부산하기관 소속인 KAFA의 태생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문화를 바라보는 관료와 예술인들의 인식 차이도 알 수 있다. 부산 이전이 법적으로 확정된 건 2009년이었다. 그 사이 영화계는 이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현장 밀착형 교육 커리큘럼이 장점인 KAFA의 경쟁력 약화, 영화 인프라가 90% 이상 집중된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감으로 인한 위상 변화 등 리스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이 명동에서 안산으로 옮기면서 이전 같은 파급력을 내지 못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이 안성으로 이전했다가 충무로 오가는 데 많은 시간만 쓰고 서울로 복귀한 사례 역시 이에 대한 우려를 부추겼다. 게다가 부산은 거리상 심리적 부담이 컸다. 수시로 소통하며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준 감독과 평론가 등의 강사진을 부산으로 유인하는 방법과 학생 지원율 하락에 대한 걱정, 무엇보다 숙소 문제에 대한 고민이 컸다. KAFA의 특징 중 하나가 아웃 소싱인데, 능력 있는 외부 스태프와의 교류도 문제였다. 부산으로 이삿짐을 싸는 순간에도 KAFA가 고민한 문제였다.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사 (부산)
 
 그리고 부산 생활 4년 차, 대안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일단 지리적 문제로 추가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예산 확보로 반전의 기회를 잡은 분위기다. 지난 12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1KAFA의 예산은 전년 대비 33억 증액된 95억 원. KAFA18억 정도로 운영하던 예산을 202062억으로 크게 증액한 바 있는데, 다시 한 번 예산을 늘리며 100억대를 바라보게 됐다. 부산 이전 후 5배 정도 늘어난 예산을 확보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장편과정 예산이 영화 한 편당 1억 원에서 35000만 원 수준으로 늘었다. 사실 초저예산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과 스태프 처우 문제, 그리고 품앗이 제작은 꾸준히 제기돼온 장편과정의 문제점이었다. 그렇다면 예산이 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KAFA의 조성원 원장은 이전엔 무리한 노동을 통해 제작이 이뤄진 게 사실이다. 상업영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지난해부터는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수준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촬영 시간 엄수 등 지켜야 할 게 많아지다 보니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는데, 이젠 과거의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영화산업에 나가기 전에 미리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우리 교육의 일환이다라고 말한다.
 예산이 증가하면서 연간 장편 제작 편수도 늘었다. 기존 2편에서 지난해 6편으로 늘었고, 올해는 8편을 선발한다. ‘제작 중심, 소수정예, 개성 존중이라는 전통은 계승하면서 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부산영상위원회도 팔을 걷어붙였다. 장편과정 선정작 중 부산을 배경으로 부산 스태프를 포함해 장편영화를 만드는 작품 한 편을 별도로 선정해 제작비 15000만 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이 사업에 선정되면 최대 5억 원의 제작비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늘어난 15000만 원이 작품의 질적 향상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부산에서 촬영이 진행되면 숙박비와 교통비 등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와 부산영상위원회는 추가적인 혜택 제공을 살펴보는 중이다.
 
본 기사의 원문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한국영화> 132호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는 영화산업 내 주요 이슈들을 취재하여 영화업계 및 유관분야 종사자들에게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영화산업 전문월간지입니다.
  (한국영화 링크) https://www.kofic.or.kr/kofic/business/rsch/findPublishDetail.do?boardNumber=40&flag=1&pubSeqNo=2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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